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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시간 :
3월-10월 : 09:00~18:00
11월-2월 : 09: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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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시설 :
50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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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수 :
4800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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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여행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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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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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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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립박물관(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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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민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과 학술자료 제공을... |
소재지 :
부산 남구 대연4동 9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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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묘지 공원 입구 참전기념관 옆에 위치한 시립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1,448평으로 냉,난방과 공기 정화 시설까지 갖추었다. 등록 자료 211점, 미등록 자료 4,612점이 소장 되어 있으며 개관시간은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과 설날을 제외하곤 개관한다. 관람 소요시간이 30분~1시간 정도로 인근에 부산 문화회관, 부산 시민 화관등이 있다. 박물관의 특색은 부산 시민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과 학술자료 제공을 위해 선사 시대 부터 현재에 이르는 문화재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부산 지역 선사,고대,중세 문화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 발굴유물 보존처리 및 시민의 문화의식 증진을 위한 사회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선사가야실, 가야실, 도자실(도자실), 역사자료실, 서화실, 공예실, 특별전시실 등 각종 전시실이 있으며, 그밖에 강연회, 발표회, 연주회를 할 수 있는 소강당과 도서실,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개인 소유 통일 신라시대 금동보살입살(국보 200호)를 비롯하여 부산시내 각 대학 박물관, 국립 경주 박물관, 국립 중앙 박물관, 국사 편찬 위원회와 멀리는 中國 역사 박물관에서까지 유물을 보내와 부산 시립 박물관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정원으로 꾸민 뜰에는 척화비와 동래남문비, 약조제찰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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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
● 부산역,남포동 방면에서는 : 134번 이용 ● 서면,가야 방면에서는 : 25,68,93번 이용 ● 해운대 방면에서는 : 107,108,139,140번 이용 ● 동래방면에서는 : 51,78번 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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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군인 |
군경 |
| 개인 |
200원 |
70원 |
70원 |
| 단체 |
150원 |
50원 |
5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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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보살입상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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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 臺座 >와 광배< 光背 >는 없어졌으나 품위가 있고 당당한 불상이다. 머리 위에는 육계< 肉계 >가 높이 솟아 있고, 이마의 머리카락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드리워지지는 않았으며, 뒤에는 머리카락의 표현이 없다.
얼굴은 기름하고 장대< 壯大 >하며, 반쯤 뜬 눈이 옆으로 길게 돌았는데, 반달모양의 눈썹은 개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코는 작은 편이나 오똑하고, 입이 매우 아름답다.
두 귀는 길어서 거의 어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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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2년명납석제호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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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삼장면 보선암 폐사지의 석불대좌중대석에서 발견된 곱돌항아리.이 납석호에 의해 내원사 석조비로자나좌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이 밝혀져 신라시대 비로자나 불상의 조성연대를 8세기까지 끌어올리게 됨으로써, 불교사와 미술사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릇의 안팎에 칼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별다른 장식은 없으나 어깨에 한줄 아랫배에 두줄의 쌍선을 음각하였다.
뚜껑의 윗면에도 두줄의 동심원을 음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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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동하면고문서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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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면고문서는 조선시대 동래부 동하면(지금의 해운대구 일원)의 지방자치행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서로서, 이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소상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조선후기 지방행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동하면 고문서로서 보존되어 온 자료는 [동하면 호적대장]1책을 포함 모두 30책이다.
문서의 분량으로 보면 1910년 이전의 문서가 383면, 이후의 문서가 87면으로 도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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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조제찰비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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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朝鮮時代 > 부산< 釜山 >에는 일본< 日本 >과의 교역장< 交易場 >으로 왜관< 倭館 >이 있었다.
이 비는 숙종< 肅宗 > 9년(1683) 통신사< 通信使 >로 일본에 갔던 윤지완이 쓰시마섬주< 對馬島主 >와 왜관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처리를 놓고 5개조에 달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돌아와 우리나라와 일본간에 맺은 약속을 간추려 공시< 公示 >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1. 출입을 금한 경계 밖으로 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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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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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조선< 朝鮮 > 말기< 末期 >에 대원군< 大院君 >이 펼친 쇄국정책< 鎖國政策 >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 和親 >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임을 온 백성에게 경계한다.
병인년< 丙寅年 >에 지어 신미년< 辛未年 >에 세움"이다.
전국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이 비는 조선 말기에 서양< 西洋 >의 열강< 列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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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남문비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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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충렬비< 東萊忠烈碑 >라고도 하는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분들의 충렬< 忠烈 >을 기리어 당시의 격전지인 동래읍성의 남문 밖 농주산< 弄珠山 >에 세웠던 것이다.
비는 크게 파손되어 현재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얼마되지 않으나 동래부읍지< 東萊府邑誌 >에 이 비의 비문이 실려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임진년(1592) 4월 13일 왜적이 침입하여 다음날 싸움에서 부산진첨사< 釜山鎭僉使 > 정발< 鄭발 >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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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사지삼층석탑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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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은 사지 서쪽의 평평한 대지위에 서 있었다.
옛 토지기록에 「탑야미(塔夜味)」라고 나오는 것은 부락민들이 말해 내려오는 「탑배미」를 이두식(吏讀式)으로 표기(表記)한 것이다.
탑은 탑배미에 넘어지고 탑재(塔材)의 일부가 산일되어 개인묘지의 상석(床石)으로 사용되는 등 많이 없어졌다.
그 일부는 석등(石燈)의 부재(部材)와 함께 사기(寺基) 부락 아랫쪽의 계곡 건너편에 옮겨져서 개인이 점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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