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렬사(忠烈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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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충절과 부산정신의 표상 |
소재지 :
부산 동래구 안락동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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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부산지방의 호국선열(護國先烈)들의 영령(英靈)을 모신 곳이다. 1592년 4월13일(음력) 부산진성을 침략한 왜적이 4월15일 동래성을 에워싸고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戰則戰矣 不戰則 假我道)"라고 하였을 때, "싸워서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라고 써서 적중에 던지고 싸우다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공을 모시기 위해, 1605년 (선조38) 당시 동래부사 윤훤(尹喧)이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이다. 그후 1642년(인조2)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임금이 사당·서원 등에이름을 지어 내리는 것)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3) 동래부사 윤문거가 당시의 사당이 좁고 저습하며, 성문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師表)가 되므로 이를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문제삼아 안락리 현재의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한 후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 서원에서의 교육과 함께 동래의 유림에 의해 봉행되는 제향이 민족정기를 북돋운다고 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방해를 가했기 때문에 서원과 사우 (祠宇:신주를 모시기 위해 따로 지은 집)는 보수를 하지 못하고 낡아 허물어져 갔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정화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규모로 정화한 후 임진왜란때 순절한 동래 부사 충렬공 송상현공, 부산첨사 정발장군 등 부산지방에서 순절한 민, 관, 군 등 모든 선열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 (曾職)의 순서에 따라 91위의 신위를 모셨다. 현재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는 (재)충렬사 안락서원에서 홀기에 의해 제향이 올려지며, 매년 5월 25일에는 부산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부산시에서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충렬사 제향은 400년간을 유림에서 연면히 이어오고 있으며 한국 고유의 전통 제례법에 의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충렬사 내에는 본전과 의열각, 기념관, 소줄당, 군관청, 정화기념비, 송상현공 명언비, 임란 동래24공신 공적비, 충렬탑등 볼 유적들이 많이 있다.
입장시간 : 09:00~17:30, 퇴장시간 18:00 동절기(11/1~2월말) : 09:00~17:00 하절기(3/1~10월말) :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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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교통
●지하철 교대역, 연산동역에서 하차후 시내버스(15분)를 이용하여 안락로타리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5분 소요.
●시내버스 : 31, 307, 47, 100, 52-1, 100-1, 31-1, 247, 378, 183, 188, 89, 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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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23-42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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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학생 |
청소년 |
어린이 |
| 개인 |
100원 |
50원 |
50원 |
50원 |
| 단체 |
70원 |
30원 |
30원 |
3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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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
중형 |
대형 |
| 30분 |
300원 |
600원 |
900원 |
| 10분단위 |
100원 |
200원 |
300원 |
| 당일 |
2,400원 |
4,800원 |
7,2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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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기념관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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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부산진 다대포진등 각진영에서 항전 분투한 선열들의 전황기록화 6폭(幅 900호 2점, 550호 4점)과 송상현공의 친필 천곡 수필등 고서 40여점과 교지, 선열들의 유품(갑옷, 투구, 전복), 숙종, 영조, 순조께서 송상현묘소에 내린 치제문등 총99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현판글씨 : 서 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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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본전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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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충렬사 정화시 건축된 팔작 일출목 다포 (一出目 多抱)형태의 건물로 부산지방을 지키시다 순절한 선열 22위와 동래, 부산진, 다대진, 및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 4위, 의병 61위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의 본당이다.
현판글씨 : 고 박정희 대통령 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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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의열각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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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義女)와 당시의 동래부사 송상현공과 부산첨사 정발장군을 따라 순절한 김섬(金蟾), 애향(愛香)의 두 열녀(烈女)등 4위의 위패를 함께 모신 사당으로 맛배 이익공(二翼工)의 형태다.
현판글씨 : 배 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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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줄당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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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선열들의 . 충효정신을 교화(敎化)하기 위하여 1652년(효종3년)에 건립된 강당으로 당호(堂號)는 한유(韓愈)의 이재송(夷齋頌)에 나오는 "소호일월 부족위명이요, 줄호태산 부족위고"(昭乎日月 不足爲明줄乎泰山 不足爲高)의 첫 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
현판글씨 : 양 진 니 (楊 鎭 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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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청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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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조선시대< 朝鮮時代 > 동래부사청< 東萊府使廳 >의 하나로 군사 관계를 다루던 군관들의 집무소였다.
장관청< 將官廳 >과 함께 이 고장의 국방을 담당하는 중추기관< 中樞機關 >으로 설립된 것으로 그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朝鮮 > 숙종< 肅宗 > 원년< 元年 >(1675)에 동래부사 어진익< 魚震翼 >이 중창한 후 숙종 35년(1709)에 부사< 府使 > 권이진< 權以鎭 >이 다시 고쳤으며 순조< 純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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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제향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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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의 제향은 조선왕조의 유교적 정치이념에 젖어 생활철학이 구체화된 의식으로서, 이 고장의 선비들이 자발적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최후를 마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공과 백성들의 영령·의백<儀魄>을 송공사<宋公祠>에 봉안하고서 제향을 모신데서 비롯된 것이다.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봉행하는데 제향을 10여일 앞두고 역대 안락서원장으로 구성된 원회<院會>를 개최하여 제관을 선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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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기념비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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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바다를 건너 침략해왔던 1592년 임진(壬辰) 음력 4월 13일 부산지방의 성주와 백성들은 일치단결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그 성과 운명을 같이 하였다.
부산이 없으면 동래가 없고 동래가 없으면 나라 전체가 어찌될지 모를 사정을 누구보다도 절감한 동래부사 송상현과부산첨사 정발, 다대첨사 윤흥신은 적을 맞아 용전분투 끝에 옥쇄(玉碎)하여 대의(大義) 앞엔 개인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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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공 명언비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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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동래성을 침공하기전 취병장에 집결하여 우리의 전의(戰意)를 타진코자 패목(牌木)에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라"(戰則戰矣 不戰則 假我道)고하자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 어렵다."(戰死易 假道難)는 내용의 글을 쓴 팻말을 적중에 던지고 성(城)과 운명을 같이 할 결의를 다짐한 호국정신을 잘 나타낸 명언을 비로1982년 6월 10일 제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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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동래24공신 공적비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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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절한 동래지방출신으로 창의모병(倡義募兵)하여 선무원종공신록권(宣武從功臣綠券)에 등재된 역전토적(力戰討賊)에 전공(戰功)이 혁혁(赫赫)한 24전공신의 공적비로 1988년 5월 14일 제막(除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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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탑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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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동 838번지 충렬사 입구 동쪽에 충렬탑이 높이 서서 그 위용이 늠름하다. 높이 약 5m의 화강암 대석 위에 약10m의 곧은 외줄기 탑이 높이 솟았다. 대석 정면 한 가운데는 『忠烈』이란 각자가 힘차게 새겨졌다.
대석 위에는 갑옷에 투구를 쓴 장수가 군도(軍刀)를 높이 들고 앞서고, 그 뒤로 깃발을 든 무사가 따르고, 활을 쏘는 민간인에 민간인 여인이 화살을 건네주고 횃불과 깃발을 치든 사람이 따르고 있다. 이 여섯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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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중지
(부산 동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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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들의 충절과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자랑스런 터전을 직접 둘러보고 나라와 고장을 굳건히 지킬 것을 다짐해보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조그마한 연못을 정화사업시 개조하여 비단잉어 등 관상어가 노닐고 있다.
1990년 10월 20일 의중지로 명명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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