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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축사
진흥왕때 축조된 소박한 절
소재지 : 울산 동구 동부동 569
동축사 동축사는 울산 동구 남목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남목초등학교를 지나면 남목그린타워 앞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동축사로 가는길은 두갈래 길이 있는데 좌측 남목정수장쪽 가파른산길이나 시멘트포장이 잘 되어 있다 길끝에 다시 308개의 계단이 260m가량 이어져 있다. 가파른길을 택하지 안으려면 우측 계곡쪽의 길을 선택하면 된다 이길로 등산객들 많이 다니고 있다

동축사의 기원은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에 등에 상세히 나와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동축사는 경주 황룡사가 건립된 직후인 신라 진흥왕 30년(569년)에서 36년 사이에 삼존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세웠다. 신라 경순왕 2년 (928)에 중건하였고, 고려 정종(1035 ∼ 1045)때 재창하였으며, 조선 세조 3년(1457)에 다시 중건하였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재차 중건을 하며 내려오다가 1970년대 박정희대통령 말기에 마지막으로 중건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뜰에 있는 5층 석탑은 본래의 3층 석탑이 고려때 지나치게 훼손되어 서편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5층탑을 건립한 것이다.
조성 당시(1977)에 두륜산의 대흥사 주지 박영희스님에게서 옛날 소동파가 출가하여 수행중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전수 받아 석탑 안에 모시고 2차 인연 공덕으로 이체 중생의 자타 성불을 기원하였다.
본래 있었던 석탑은 3층인데 기단 정면은 두개의 화강암을 연결하여 만들었으며 뒷면은 긴 화강암을 두개 겹쳐 놓고 양쪽 면은 전후 기단 사이에 한돌을 조각한 형태로 만들었으나, 지나치게 회손된 부분이 심해 안정성과 전통적인 석탑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그러나 울산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인정되어 향토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석탑의 기단 위 제 1층 탑신을 받치고 있는 방형의 탑신 같은 것은 2중의 기단처럼 보이나, 이것은 기단 내부에서 제 1탑신을 받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재 건축할 때 잘못하여 탑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실하고 있다.
탑신은 우주를 두지 않은 평면이며 제 2탑신은 매우 파괴되어 있고 탑신은 하나로 되어있다.
옥개석도 하나의 돌로 짜여져 있으며 전체의 받침석이 5단으로 축조되었으나 제 3옥개는 3단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울산공항에서
[33, 101)번을 타고 [남목]에서 하차
*울산역에서
[1-2, 102, 112]번을 타고 [남목]에서 하차
*고속,시외버스터니널에서
[1-2, 102, 112]번을 타고 [남목]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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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
  • 유래
  •   신라 24대 진흥왕 34년(573) 3월에 하곡현 한 곳에 외국(인도의 아쇼카왕)의 큰배가 떠 왔다 하여 현리가 가보니 서축국(인도)의 아육왕(아쇼카왕)이 문서(첩문)와 황철(5,900)과 황금(3만불)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다. 아쇼카왕은 천하를 평정한뒤 스님의 설법을 듣고 깨우친 바가 있어 불문에 귀의 하였는데, 인과를 바로 알고 참회하는 뜻으로 팔만사천의 대보탑을 세우고 대작 불사를 하였다. 그 러나 삼계의 스승이며 사생의 어버이인 부처님도 열반에 듦으로 아쇼카왕의 심정은 새삼 무상함을 체험하면서 진신세존께 공양을 올리지 못함을 한탄하여 불상조성을 하였으나 세 번이나 실패하였다. 왕은 인연 없음을 깨닫고 황철과 황금과 일불이 보살상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며 인연 있는 나라에 가서 불사가 이뤄지기를 빌었다. 이 같은 일이 있어 띄워 보낸 배는 인도 남쪽 一六개 대국과 五백여 중간 국가와 一만여 작은 나라, 八만여 촌락을 두루 거쳐서 다다른 곳이 이 고장 하곡현 사포(울산)에 당도한 것이다. 하곡현의 관 리는 이 같은 사실을 신라 조정에 가서 자세히 아뢰었다. 신라 왕실에서 곧 관리를 파견하고 황철과 황금을 신라 서울 서라벌로 실어 왔다. 조정 대신들이 감정하고 나서 문서에 적힌대로 황철과 황금을 녹이고 끓여 삼존불상의 모형불을 본떠서 형틀을 만든 다음에 쇳물을 형틀에 부었다. 쇳물이 식은 후에 형틀을 뜯어내니 단 한번에 깨끗이 삼존 불상이 이루어졌다. 삼존 불상은 일불 이보살이라고 했으나, 일불은 석가모니불이요 이불은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석가모니 불상과 두보살은 황룡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그 불상을 가리켜서 장육존불이라고 한다. 인도의 아육왕이 이 불상을 주조하려 한 것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에 너무나 포악한 정치를 베풀어서 많은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서촉국 대향화국에서 부처님(석가모니)이 세상을 떠난 지가 백년이 되었으므로 자신의 죄를 석가모니의 생전에 사죄하고 공양하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불상이나마 주조하여 그 앞에 사죄하고 공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배에 실어 바다에 뛰운 것이 이곳 신라국으로 떠와서 불상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불상이 이뤄져서 황룡사에 봉안한 후에 서축국에서 온 배가 닿은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동축사를 창건하고 여기에 인도로부터 배에 실어 보낸 목형 모형물을 모셨다고 한다. 절의 명칭을 동축사라고 한 것은 인도가 서쪽의 나라이기에 서축이라고 하였으니 그 서축국의 동쪽에 위치하는 신라를 동축국으로도 통하리 만큼 서축의 불교가 신라에 뿌리를 깊이 내려서 서축과의 인연이 두터워 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부가정보
    동축사삼층석탑
    [동축사삼층석탑]
    동부동의 동축사에 있는 탑이다. 이 탑은 본시 대웅전 앞에 있던 것을 1977년 절의 서편에 옮겨 세운 것으로 고려시대의 일반형 3층석탑이다. 탑의 기단 정면은 두 개의 화강암을 결구(結構)하였으며 뒷면은 긴 화강암 두 개를 겹쳐 놓고 양측면은 전후 양면의 기단 사이에 한 돌을 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파괴된 부위가 많고 정제성을 잃고 있다. 기단 위에는 제1탑신을 받치고 있는 그 중의 기단처럼 보이는 방형의 탑신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기단의 내부에서 제 1탑신을 받치고 있던 것인데 옮겨 세울 때 이러한 형태로 만들어 탑의 아름다움을 잃고 있다.
    그러나 울산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인정되어 향토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탑신에는 모두 우주를 두지 않은 평면이며 제2탑신의 뒷면은 몹시 손상되어 있고 탑신은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옥개석도 모두 한개의 돌로 되어 있고, 제1, 제2의 옥개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으나 제3 옥개는 3단 받침으로 만들었다. 탑의 높이는 3.4m이다.
      Photo Gallery
    동축사 내부1
    동축사 내부1

    동축사 내부2
    동축사 내부2

    동축사 대웅전
    동축사 대웅전

    동축사 대웅전 내 불상
    동축사 대웅전 내 불상

    동축사 5층석탑
    동축사 5층석탑

    동축사 종
    동축사 종

    동축사 올라가는 300여개의 계단
    동축사 올라가는 300여개의 계단

    동축사 올라가는 길의 체육시설
    동축사 올라가는 길의 체육시설

    동축사 가는길
    동축사 가는길

    동축사 절간의 개
    동축사 절간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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