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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보물 1177호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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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분류 :
[회화-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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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수량 :
3점(영정 1폭, 함 1점, 교서 1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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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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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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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오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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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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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항영정병함부양무공신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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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모가 크고 인품이 뛰어났던 오명항의 초상 |
소재지 :
경기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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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항(吳命恒)의 초상은 관복 차림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 1본, 유복단령 (儒服團領)의 반영(半影) 1본이 구성면 마북리 245번지의 오세민 씨댁에 전한다. 전신교의좌상의 초상은 좌안팔분상(左顔八分像)이다. 사모각(紗帽角)의 철선(鐵線)은 구갑문(龜匣紋)으로 선묘(線描)되었다. 공수(拱手)의 녹포단령(綠袍團領) 위로 쌍학(雙鶴)의 흉배가 정교하게 모사(模寫)되었고, 그 위로 서대(犀帶)가 나타난다. 특히 오사모(烏紗帽) 아래 정제(精製)된 안모(顔貌)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명신 (名臣)으로서의 기품이 엿보인다. 안면 사출은 종두자리까지 세밀히 모사되어 형(形)과 영(影)의 사실적 표현에 매우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초상 우측 상단에는 오명항 생전의 직함과 증시(贈諡)된 충효공(忠孝公)의 시호가 기록되어 있다. 이 초상은 영조 4년(1728) 이인좌(李仁佐)의 난을 평정하고 해은부원군(海恩府院君)으로 봉해진 뒤 모사된 공신상(功臣像)으로 추정된다. 또한 반영(半影)의 초상은 흉배 없는 단령(團領)으로 서 전신상을 이모(移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초상에서는 본래부터 풍모가 크고 인품이 뛰어났던 인물임이 역력하게 나타나는데, 가슴까지 흘러내린 턱수염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오명항(1673-1728)은 현종 14년(1673)에 오수량 (吳遂良)의 아들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숙종 31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한 후 등용되어 영조 4년에는 경기·충청·전라·경상 4도의 도순무사(都巡撫事)가 되어 안성의 청룡산(현 용인시 원삼면 목신리 경계)에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양무 1등공신(揚武一等功臣)에 책록되고, 해은부원군에 봉해졌다.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 참고자료 :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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