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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사(지)
중국 태화지(太和址)에서 만났던 신인(神人)을 위하여 창건
소재지 : 울산 중구 태화동 466

태화사(太和寺)는 경상남도 울산시 태화동 반탕골 산기슭에 있던 신라시대의 사찰로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자장이 당에 건너가 수도를 하던 중 중국의 태화지(太和址) 옆을 지날 때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호국을 위하여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라고 하고, 또 자신의 복을 빌기 위하여 경주 남쪽에 한 절을 지어주면 덕을 갚겠다고 하였다. 귀국 후 자장은 태화지에서 만났던 신인을 위하여 태화사를 창건하고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세 몫으로 나누어 통도사와 황룡사 등에 봉안하고 마지막 하나는 태화사에 태화탑을 세우게 하여 봉안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은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고려 충숙왕(1332 ~ 1339) 때 울주에 있었던 정포(鄭浦)의 태화루시(詩)에 태화사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말 왜구가 극심하였던 시기에 절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왔으나 이원(李原, 1368 ~ 1429)의 태화루시에 태화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그가 관직을 물러나서 처음으로 절을 찾았더니 스님은 한가로와 문조차 닫지 않고 있구나 (官解初尋寺憎閑不閉門) 라고 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본다면 조선 세종 초까지는 태화사의 실존(實存)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절터는 반탕골을 중심으로 한 황모산(黃茅山) 일대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절이 신라 10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라 하니 오늘의 통도사를 감안한다면 화진마을 등 그 넓은 일대를 차지하였던 큰 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태화사의 유물로는 단지 십이지상 부도 한 기가 남아 있을 뿐이며 보물로 지정되어 학성공원에 보존되고 있다.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 울산공항에서
[20, 20-1, 48, 120]번을 타고 [학성여중앞]에서 하차

● 울산역에서
[318, 319, 314, 345]번을 타고 [학성여중앞]에서 하차

● 고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318, 319, 38, 314]번을 타고 [학성여중앞]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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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
  • 설화
  •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가 당나라고 건너가서 수도할 때의 일이다.

    자장이 산동반도 태화지(太和沚)가를 지나갈 때, 홀연 신인(神人)이 나타나 묻기를「너의 나라에 어떠한 곤란이 있느냐」하기에 자장이 답하되「우리 나라는 북으로 말갈에 연하고, 남으로 왜구에 접하며, 또 고구려 백제의 두 나라가 변경을 차례로 침범하는 등 이웃 외구가 종횡하니 이것들이 백성들의 근심이 된다.」하였다. 신인이 이르되「지금 너의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으되 위엄이 없는고로 이웃나라가 침략을 도모하려는 것이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라.」하였다. 자장이 묻되「고향에 가서 무엇을 하면 이롭겠느냐」하였다. 신인이 가로되「황룡사 호법룡은 곧 나의 장자로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 그 절에 9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구한이 와서 조공하여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요,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八關會)를 베풀고 죄인을 사면하면 외적이 해하지 못할 것이며, 다시 나를 위하여 경기 남쪽에 한 정사(精舍)를 짓고 함께 나의 복을 빌면 나도 또한 덕을 갚으리라」하고 말을 마치자 옥을 들어 바치고 홀연 없어져 버렸다.

    이것이 <삼국유사> 황룡사 9층탑조에 나오는 기록인데 경기 남쪽에 한 정사를 짓고 태화지 신인의 청에 따라 그의 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 바로 태화사인 것이다. 자장율사가 세운 울산 태화사는 당나라 태화지의 이름을 따서 태화사라 명명하고 태화사 앞으로 흐르는 강을 태화강이라 불렀다.
      보물
  • 태화사지12지상부도 (울산 중구)
  • 자세히..
      학성공원 산정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탑으로 우리나라 석종형(石鐘形) 부도 중에 가장 오래된 유물일 뿐만 아니라, 표면에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한 것으로는 유일한 고승(高僧)의 사리탑(舍利塔)이다. 1962년 울산시 태화리 반탕골 뒷산에서 발견 수습되었는데, 발견 당시 부도의 정상부와 남쪽면의 네모난 구멍만이 땅 위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주민들은 이것을 토끼집이라고 하였다. 한편 주민들은 이곳을 부도골이라 불러 왔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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