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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속촌
제주의 과거 생활상 생생히 되살려
소재지 : 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 40-1
제주민속촌 5만여평의 대지위에 자리잡은 제주민속촌은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보여준다.

19세기 제주도 특유의 생활풍속을 확인할 수 있는 산촌, 중간산촌, 어촌 등 전통취락지를 비롯해 목사청, 작청, 향청 등 조선시대 지방 관아도 잘 보존돼 있다. 유배자들의 배소(配所)도 귀양살이의 고달픔을 담은채 남아있다.

전래민요, 전설, 방언등 무형문화재의 명맥을 이어가는 무형문화의 집들도 민속촌의 자랑이다. 민속촌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중 상당수는 원형 그대로 옮긴 것들이며 새로 제작된 것이라 하더라도 전문가의 고증을 거쳤다.
홈페이지(URL) : www.jejufolk.com  이메일(E-Mail) : jejufolk@kas.co.kr


  찾아가는 길
◇ 승용차
●중문 ⇒ 서귀포 ⇒ 표선 ⇒ 제주민속촌 (45분소요)
●성산 ⇒ 동남 ⇒ 표선 ⇒ 제주민속촌 (20분소요)

◇ 대중교통
●제주 시외버스터미널과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선행 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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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료
  어른 청소년 어린이 군경
개인 6,000원 4,000원 2,000원 4,000원
단체 4,000원 2,500원 1,500원 2,500원
  부가정보
[산 촌]
제주도에 있는 자연 마을은 557개에 이른다. 이 마을들은 해안을 따라 밀집해 있으면서 산쪽으로 올라갈수록 그 규모가 작아진다. 산촌은 해발 300미터 이상의 준평원 지대에 형성된 마을을 가리키며 대개 반농반목(半農半牧)의 생활을 한다.
[중산간촌]
해발 100미터에서 300미터 사이의 구릉 평야지역에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대정현(지금의 모슬포)과 정의현(지금의 성읍리)현청이 세워졌던 곳도 대표적인 중산산촌이다. 이런 마을들은 문화·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어 촌]
제주가 물이 귀한 고장이어서 자연 용출수가 있는 저지대 해안마다 어촌이 형성됐다. 어촌 주민들은 반농반어(半農半漁)의 형태로 생계를 꾸렸다. 화북·조천 등지가 대표적인 어촌으로 경치·경제의 중심축이 되었다. 대부분 어부의 집, 해녀의 집이 있다.
[무속신앙촌]
섬이라는 한계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야 하는 특성 때문에 민간신앙이 성했다. 제주민속촌의 무속신앙촌에서는 섬 전체에 남아있는 민간신앙의 양상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점집, 심방집, 처녀당, 포제단, 미륵당, 해신당, 본향단 등이 복원돼 있다.
[제주영문]
영문(營門)은 감영(監營)의 별칭이다. 조선시대 제주목사의 집무청인 '본청'이 민속촌에 복원돼 있다. 본청의 책실에는 목사를 보조하는 사령이 대기하고 있었다. 본청 옆의 초가는 죄수들을 가두었던 옥이다. 통나무 창살로 칸막이를 만든 것이 특이하다.
본청 앞에는 유향소, 향사당이라고도 불리는 향청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영리청이 있다. 영리청은 육방관속(六房官屬)들이 호적 관리와 징세 등의 업무를 처리한 곳이다.
[제주의 집]
제주도의 초가지붕은 한라산 기슭 초원 지대에서 나는 '새(띠)'로 1∼2년마다 한번씩 새롭게 덮는다. 비가 많은 일부지역에서는 1년 주기가 보통이다. 작업시기는 음력 10월에서 12월초까지를 잡고 있다. 양력 12월말까지는 새를 구해 말리고 설(음력)전까지는 작업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잠을 잘 때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되면 단명하고 남쪽으로 향해서 누우면 오래 살 수 있게 된다고 믿어서, 머리는 되도록 남향으로 하려 함을 보게 되며, 부엌살림에 이용되는 솥, 물항(물독), 살레(찬장), 씨부개(씨앗주머니) 따위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 놓게 마련이다. 또한 집에서 기르는 암탉이 울게 되면 당장 잡아 버리는 습속도 있으며, '물코를 막지 않는다'는 풍속이 있어 이웃집에서 불결한 물이 자기 집안으로 흘러 들어올지라도 이를 막지 않았다. 물 흐름은 자연적인 것인데, 이를 못 흘러가게 막아 버린다면 그 윗집에는 물이 고이게 되기 때문이다. 불편과 비협조를 미리 없애려는 데서 생긴 속신의 긍정적 효과인 셈이다.
[제주의 돌]
제주도에는 돌이 많다. 들이나 밭, 바닷가에도 돌이 지천이다. 집도 돌로 지었고 밭의 경계를 갈라 놓는 데도 돌을 사용하였다. 돌은 무덤의 주위를 쌓아 불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며 우마(牛馬)로부터의 피해를 막아 내는 역할도 한다. 돌이 없었다면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다음에 집도 농작물도 선박들도 날아갔을 것이다. 돌자갈이 많이 깔린 밭은 토질이 잘 보존되어 농작물을 싱싱하게 자라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의 지질이 대부분 화산회토라서 가볍기 때문에 바람이 세게 불면 기름진 흙가루가 전부 바다로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돌자갈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지름작지' 또는 '지름자갈'이라 하여 소중하게 생각했다. 돌자갈이 없는 밭에는 여름농사 때 씨앗을 파종한 다음 농부들이 마소 떼를 내세워 밭을 잘 밟아 주었다. 땀흘려 뿌린 씨앗이 흙 속에 굳혀져서 바람에 날리지 않고 종자가 골고루 서도록 하기 위해서다.
[제주의 물]
지표(地表)와 지하가 상당 부분 물이 스미는 화산석(火山石)으로 이루어진 제주도에서는 물이 고이지 않는 지역이 많다. 그러다보니 예로부터 물을 아끼기 위한 지혜가 발달되어 왔다. 물이 귀한 중산간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비가 올 때 지붕이나 나뭇가지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먹기도 했다. 지붕 위에 내린 빗물이 집가지(처마)를 통하여 떨어지는 물을 '지신물(지샛물)'이라 하며 나무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받은 물을 '촘받은 물'이라 한다. 지붕 위에서 내리는 물은 요즘에도 받아 두었다가 걸레도 빨고 나무에도 주곤 한다. 물을 길어 나를 때는 '물허벅(물동이)'을‘물구덕'이라고 하는 바구니에 넣어 등에 지고 다녔으며, 잔칫날 같은 경우에는 동네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식수를 길어 날라주기도 하는데, 이것을 '물부지(부조)'라고 하였다. 물을 부어 넣을 때는 그 물동이를 지고 선 채로 두세 사람이 물동이를 손 하나 댐이 없이 어깨 너머로 숙여지게 해서 항아리에 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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