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 681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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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남해 한려수도 옆 비단을 두른 듯 절경을 뽐내는 산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이동면
금산 비단을 둘렀다는 뜻의 금산(錦山)은 '남해 금산'이라야 제맛이다. 금산은 남해와 함께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해발 681m로 높지 않은 산이나 대장봉, 일월봉, 사자암, 감로수, 상사바위, 쌍홍문 등 이른바 '38경(景)'이 남해 한려수도의 푸른 바다와 쪽빛 하늘 속에서 절경의 자태를 뽐낸다.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신라의 거승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세우면서 붙힌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의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붙혔다고 한다. 고려말 이성계는 여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면서 조선을 개국하게 되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주기로 약속했다. 마침내 새 왕조를 개국한 후 약속을 지킬 것을 전전긍긍 하다가 비단 금(錦)을 써 산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제주도, 거제도, 완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남해는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누각없는 현수교인 남해대교는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다리이다. 남해대교 아래로 보이는 노량 앞바다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량대첩이 있었던 바로 그 바다이다.
남해의 제1경인 쌍홍문은 금산 등반길의 들머리에 있다. 커다란 바위덩어리에 두 개의 굴이 뚫렸는데 옛날 석가모니가 돌배를 만들어 타고 지나가 생긴 굴이라고 전해진다. 굴 속에는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고 온갖 자태의 바위들이 가득하다.
금산의 주봉인 대장봉에는 관음이 머물러 있다고 전해져 불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곳에 있는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김수로왕의 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세웠다는 3층석탑도 볼 수 있다. 3층석탑 앞 망대에 서면 상주해수욕장과 한려수도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참고자료 : 남해군청 >


  찾아가는 길
◇ 승용차
●남해대교 ⇒ 19번 국도 ⇒ 남해읍 ⇒ 이동면 ⇒ 상주방면 ⇒ 보리암 입구 ⇒ 상주방면 ⇒ 금산 입구
●진주 ⇒ 3번 국도 ⇒ 삼천포 ⇒ 금남호 (삼천포~창선간 연락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고 3번 국도 ⇒ 창선대교 ⇒ 은점방면의 3번국도 ⇒ 초전 삼거리 ⇒ 19번 국도⇒ 상주해수욕장, 금산
◇ 대중교통
●남해 공용터미널에서 하루 3회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 군내버스는 상주, 금산방면으로 40분 간격으로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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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
  • 상사바위에 얽힌 전설
  •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바위로 망대 남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상사바위에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조선 숙종 때 전라남도 돌산에 사는 청년이 남해로 머슴을 살러왔다. 돌쇠는 안주인의 미모에 반하여 애간장을 태우다가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돌쇠는 상사병이 점점 깊어져 시들시들 죽어갔다.
    상사병의 원인을 안 안주인은 남편 몰래 돌쇠를 이끌고 사람이 없는 금산으로 갔다. 금산의 벼랑에서 돌쇠는 소원대로 상사를 풀게 되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후 이 바위는 상사(相思)바위로 불리게 됐으며 당시 상사풀이를 할 때 썼던 샘이 벼랑에 남아 있다고 하는데 바로 구정암이다.


    어느 부자집에 무남독녀가 있었다. 이 집에는 하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돌쇠란 하인이 무남독녀를 사랑하게 됐다. 돌쇠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사랑을 이룰 수 없자 가슴앓이만 하다가 그만 상사병에 걸렸다. 돌쇠는 시들시들 앓다가 결국 죽고 만다.
    돌쇠의 혼은 뱀으로 환생한다. 뱀이 된 돌쇠는 사랑을 이루고자 무남독녀를 칭칭 안고는 풀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떼어 내려 해도 뱀은 떨어지지 않았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인이 부잣집에 나타나 금산에 있는 높은 벼랑위에서 굿을 하라고 일러주고 갔다.
    무남독녀의 부모는 뱀에 몸이 칭칭감긴 딸을 금산으로 데려가 굿을 했다. 굿을 마치자 여인을 감고 있던 뱀은 서서히 몸을 풀고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 삼불암에 얽힌 전설
  •   마치 부처의 앉아 있는 모습과 같은 바위가 세 개 있다고 하여 삼불암이라고 불린다.
    바위 세개중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 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 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두 개의 바위가 모두 일어났다고 한다. 바위 세 개가 모두 일어나 앉았더라면 이성계는 중국 땅까지를 다스리는 천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등반코스
  • 제 1 코스
  •   매표소 -> 쌍홍문 -> 보리암 -> 정상 -> 상주리(3시간)
  • 제 2 코스
  •   매표소 -> 쌍홍문 -> 보리암 -> 정상 -> 두모계곡 -> 도로(3시간)
      Photo Gallery
    남해대교
    남해대교

    금산 보리암
    금산 보리암

    금산 일출
    금산 일출

      사찰
  • 보리암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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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금산의 비경을 한눈에 볼수있는 '3대 기도도량'
    금산의 비경과 어우러진 이 암자는 우리나라 3대 기도도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 금산의 주봉우리인 대장봉에 관음이 머물러 있다고 믿어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수도할때 이곳에 초당을 짓고 보광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기에서 100일 기도한 후 새 왕조를 창시하였다고 하여 조선 현종 원년(1660년)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
      시도기념물
  • 남해금산봉수대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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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수대는 외적의 침입을 중앙에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까지 널리 사용된 것으로, 해안가를 기점으로 서울 남산까지 연결시켜, 그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봉수조에 북쪽으로 진주 대방산, 서쪽 소글산 및 원산에 응한다고 하였다. 봉수의 경로는 모두 5거선으로 되어 있는데 이 금산 봉수는 동래 다대포진에서 서울에 이르는 제 2거선이다. 그리고 최남단에 자리 잡은 것으로 남해원산과 미조항의 두개 ...
      문화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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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전주이씨 후예들이 관리하면서 주변 정비사업을 펼쳐오던 남해금산 영응기적비 및 대한중흥송덕축성비가 1998년 11월13일 도 문화재 자료 제277호로 지정됐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서 선유제를 지내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금산 38경 중 하나인 삼불암(三佛岩) 아래 있는 단이 바로 선유제를 지냈던 이태조 기단이다. 그 후 조선 철종은 금산이 가장 선연이 깊다며 중조붕 아래에 전각을 짓고 전패(殿牌)를 모셨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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