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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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고찰 |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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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호구산(虎丘山, 650m)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고찰(古刹)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호구산은 갖가지 나무들에 덮여있으며 계곡의 맑은 물이 산자락 아래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龍沼)로 흘러든다. 호구산은 용문사를 품고 있는데 절 안에 들어서서 산세를 살펴보면 호랑이와 용에서 따온 산과 절의 이름과는 달리 사방이 포근하고 온화하다.
용문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세웠다는 보광사(寶光寺)의 후신이라 전해오고 있다. 조선 숙종때 수국사(守國寺)로 지정되어 왕실의 축원당으로 삼아 보호를 받은 사찰이기도 하지만 그후의 역사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대웅전은 지방유형문화재 제 85호, 대웅전옆 별채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은 지방유형문화재 제38호, 천왕각은 문화재자료 제150호, 명부전은 문화재자료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외에도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사용하였다는 삼혈포(三穴砲)와 숙종때 하사받은 유물로 연옥등(蓮玉燈) 2개와 촉대 1개, 번(幡)과 수국사금패(守國寺禁牌) 등이 있다. 그러나 연옥등과 촉대는 일본인들이 수탈해 가고 없다.
< 참고자료 : 남해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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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 남해대교 -> 19번국도 -> 용소마을 -> 용문사 |
◇ 대중교통
● 남해읍 터미널 남면 가천행 군내 버스 이용 (용소리에서 하차, 25분 소요) 용소리에서 용문사 입구까지 도보로 30분 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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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청 055-864-3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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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는 남해와 인연이 매우 깊은 것 같다. 용문사 역사도 원효대사로부터 시작한다.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을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했다.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瞻星閣)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이다.
조선시대 현종 원년(1660)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면대하였다 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백월당 대사는 스님들과 함게 먼저 선당양당(禪堂兩堂)을 지었다. 승당은 신운이 모화하여 다음해인 현종2년(1661)에 준공했다. 그리고 6년 뒤에 일향이 대웅전을 창건하였고 지해가 윤색하였으며 성암이 봉서루를 창건하였고 태익이 낙성했다.
이밖에 나한전은 보휘, 명부전은 설웅, 향적전은 인묵, 첨성각은 설잠, 천왕각은 유탁, 수각정은 각오가 낙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어 숙종34년(1708)에는 염불암을 중창했다. 관음, 백운 두 암자는 고을사람들의 발원으로 축조했다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뒤에 백련암(白蓮唵)을 절의 서쪽에 신축하였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다. 그 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포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그것이다.
조선 숙종(1675∼1720)은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서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번 등을 하사했다. 그러나 연옥등, 촉대 등은 일본 강범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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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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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악산 용문사의 부속암자.
조선 영조 27년(1751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보광전, 요사채가 있다.
일제시대 3.1 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이였던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설석우 스님, 성철 스님등 고승들이 거쳐간 곳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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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대웅전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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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원년(1660)에 백월당 학섬대사가 용문사를 현 위치에 정하고 선당양당(禪堂兩堂)을 현종 2년(1661)에 준공하였다.
6년 후인 현종 5년(1666)에 일향스님이 대웅전을 창건하고 지해스님은 단청을 맡았다고 <용문사 창건기>는 기록하고 있다.
현재에 있는 대웅전은 숙종29년(1703)에 성화스님이 낡은 대웅전을 고쳐 새롭게 지은 것이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계미년(숙종 29, 1703)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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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석불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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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높이 82㎝, 어깨 넓이 38㎝,무릅 폭 66㎝. 고려시대 석조보살좌상.
임진왜란이 종전된 약 30년 후 용문사가 재건시에 경내 마당에서 출토(出土)되었다고 전하는데 보관(寶冠)을 쓰고 양락(瓔珞, 구슬목걸이)과 비천(臂釧, 팔찌)로 장식하였고 왼손에 보병을 들었다.
이 석불은 원래 돌로 되어 있었는데 후에 누군가가 회를 발라 하얀 모습으로 변했다.
손에 연꽃을 들고 자애롭고 온화하면서도 존엄한 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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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촌은집 책판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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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은집책판은 조선중기 시인인 촌은 유희경(村隱 劉希慶)의 시문집이다.
본래 손자 자욱이 수집하고 김창협이 선정한 것을 증손인 태웅에 의하여 1707년(숙종 33)에 3권 2책으로 목활자본으로 발간한 것이다. 촌은집(村隱集)의 원본은 규장각도서로 보존되어 있다.
규모는 목판 52매.
어떠한 연유로 그 책판이 용문사에 보존되어 있는지 그 연유는 전해오지 않아 알 길이 없으나 다만 증손 태웅이 호남지방의 만호(萬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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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천왕각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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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
일주문을 지나 무지개돌다리(石虹橋)를 지나면 잘 정돈된 돌바닥길 저쪽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창건시에 유탁(庾卓)스님이 지었던 것이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조선조 숙종 28년(1702)에 중창된 것으로 용문사의 관문이다.
천왕문(天王門, 天王閣)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외호신이란 불국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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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부도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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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잠시 걸으면 일주문 입구 우측 약간 높은 곳에 부도가 보인다.
부도(浮屠)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 부도는 법제문도(法第門徒)들이 선사(先師)를 섬기는 극진한 마음에서 선사가 입적한 뒤 정성을 다하여 세우는 것이다
부도는 남부지방에서는 찾기 힘들다고 한다. 부도는 모두 9기로 용문사가 선사를 많이 배출한 오래된 전통 사찰이라는 상징에 다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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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명부전
(경상남도 남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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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冥府殿)은 지장전(地藏殿) 또는 십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대원력(大願力)의 상징인 지장보살(地藏菩薩, 땅속에 몸을 갈무리한 보살)을 중앙에 모시고 명부의 십왕을 좌우로 모셨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로 부터'지장(地藏)'이라는 이름을 받은 18세 소녀는 오로지 중생제도를 위한 힘을 길렀고 중생을 해탈시키기 위해서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일조차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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