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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섬
소재지 : 경북 울릉군 울릉읍

우리나라 동쪽 끝에 오각형으로 모양의 거대한 섬. 동해 중부 해상의 2천m 깊이에서 화산이 분출되어 형성된 섬이다.
해발 984m에 달하는 성인봉을 중심으로 험준하고 깊은 계곡, 병풍같은 기암절벽 등이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 신비의 섬이다.
면적은 73.15㎢로 우리나라에서 7번째 큰 섬이다. 부속섬으로 독도와 죽도, 관음도 등이 있다. 1개 읍과 2개 면 군, 약 3,800가구에 11,000여명이 살고 있다.포항에서 217㎞, 동해안에서 제일 가까운 곳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임원리에서 137㎞ 거리에 있다.
도동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해안을 따라가면서 공암을 비롯 삼선암 관음도 죽도 만물상 사자바위 등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울릉도는 흑비둘기 너도밤나무를 비롯 희귀 동식물과 천연기념물 등 풍부한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울릉도에 없는 것 세가지는 뱀, 도둑, 공해(혹은 거지). 많은 것 세가지는 돌 바람 미인. 풍성한 것 세가지는 물 향나무 오징어. 높은 것 세가지는 산 파도 물가.
해마다 10월 선현들의 전통을 후세에 전수, 보존하기 위해 우산문화제가 열린다. 이 기간에는 전야제, 전시회, 노래자랑, 체육대회, 전통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울릉도 역사>
예부터 우산국, 우릉, 무릉, 울릉 등으로 불림.
고분 출토품과 누석총 등으로 미뤄 상고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울릉도 주민들이 조공한 사실, 여진족의 침탈로 무인도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태종 때 치안을 위해 도민을 본토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희귀 수목과 풍부한 수산자원을 탐낸 왜선들이 노략질을 하게 되자 조선 숙종 19년(1693년) 안용복이 왜선을 쫓아 왜선의 침입을 완전히 금지시켰고 그 후 정기적으로 순찰을 실시하였다.
고종 19년(1882년) 공도정책 철폐, 개척령 반포. 1883년에 첫 개척민 54명 입주.
1900년 도장제 대신 군수제 전환.
1907년 강원도 관할에서 경상남도로 이전.
1914년 경상북도로 편입, 행정구역 남, 서, 북으로 개편.
1915년 칙령 제66호 도제 실시로 도사를 두고 치안, 교육, 행정을 겸하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제에 따라 울릉군으로 개칭.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포항에서 도동항까지 쾌속선 이용. 3시간~4시간 소요. 동해 묵호항에서도 배편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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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
  • 남근(男根)봉우리와 처녀(處女)봉
  •   옛날 사태구미 골짜기에 아내를 일찍 여윈 한 농부가 어린 딸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딸이 벌써 시집을 갈 나이가 되었으나 절해고도라 이웃이 없어 총각이 없었다.
    주야로 신세타령을 하던 어느 날 처녀가 꿈에 동쪽으로 쳐다보니 미묘한 산봉우리가 몸으로 안겨왔다.
    그 후 딸은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 그 경위를 말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어디서 못 된 짓을 했느냐"고 노발대발, 딸을 내쫓고 말았다.
    불쌍한 딸은 그 무거운 몸을 안고 뒷산 봉우리에 올라가 꿈에 보았던 동쪽 봉우리를 내려다 보며 출산도 못하고 만삭의 몸으로 수줍게 북쪽을 향하여 서 있었다고 한다. 그 산봉우리를 나팔봉이라 하는데 남근(男根) 봉우리라고도 한다.
  • 비파산(琵琶山)과 학포(鶴圃)
  •   우산국 시절 우해(于海)라는 왕이 있었다. 용맹이 뛰어나 대마도까지 가서 대마도 왕에게 항복을 받고 그 셋째 딸을 왕비로 데리고 왔다.
    풍미녀란 이름의 그 왕비가 우산국으로 올 때 학(鶴) 한 마리와 12명의 시녀를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러나 왕비가 된 이후 사치가 심해 우산국의 국력을 거의 탕진한 뒤 별님이라는 공주를 남기고 퐁미녀는 죽고 말았다.
    우해왕은 왕비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뒷산에 병풍을 치고 백일 동안 제사를 지내며 대마도에서 온 12시녀에게 날마다 비파를 치게 하고 왕비가 데리고온 학도 병풍 앞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백일째가 되던 날 학이 날아갔고 그 학이 날아간 곳이 지금의 학포이다. 그 때 병풍을 치고 비파를 울렸다 해서 비파산이라는 이름도 생겨났다.
  • 노인봉(老人峰)
  •   어느 노인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눈이 많이 와 마을로 내려 가려고 하자 눈이 멎었다. 그래서 다시 나무를 하려고 올랐다가 눈에 파묻혀 죽고 말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 노인봉이다라고 한다.
  • 송곳산에 관한 전설
  •   송곳산(1)

    송곳산은 성인봉 줄기의 하나로 송곳처럼 솟아 있다. 일본인들이 이 산의 기운으로 큰 장수가 날 것이라고 믿었다 한다.
    그래서 이 송곳산 꼭대기에 커다란 쇠 말뚝을 박게하고 커다란 깃대를 세웠다.그 때 송곳산에 올라갔던 사람은 거기에 깃대를 세운 뒤 떨어져 죽었고 큰 바람이 불더니 그 쇠말뚝도 깃대도 무너져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송곳산(2)

    옛날에는 이 산에 향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봄이 되면 산에서 돌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하루는 도깨비들이 모여앉아 돌이 안 떨어지게 하자는 회의를 열었다. 7일 동안이나 회의를 했지만 뽀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12시에 갑자기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는가 싶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었다.
    그 다음날 보니 송곳산이 무너져서 향나무들이 모두 땅에 묻혀 있고 논이나 밭도 모두 묻혀 버렸다. 도깨비들도 산이 무너지는 통에 모두 묻혔다. 그 뒤부터는 이 근처를 다니는 사람은 밤에도 무섭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송곳산이 낮아졌다고 한다.
  • 미륵산 (태하 서달령 뒷산)
  •   미륵산 근처에 살던 한 노인이 어느 날 밭을 매고 있었다. 그 날은 구름이 많아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 어디선가 풍악 소리가 들리더니 황소보다 몇 배나 크고 황소를 닮았으나 황소는 아닌, 발이 가마솥 뚜껑 만한 짐승이 노인의 바로 앞에 서 있는게 아닌가.
    질겁을 한 노인이 호미를 버린 채 집으로 뛰어갔다. 뛰면서 노인은 '미득님네, 미득님네, 제발 좀 살려주소. 가련한 이내목숨 미득님이 돌보시면 오늘이날 무사하리 비나이다 미륵님네 비나이다 미륵님네'하고 빌었다.
    그 때부터 노인은 병이 나 앓아 누웠다가 겨우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밭에 올라가보니 그 무시무시한 짐승은 보이지 않고 밭고랑에 호미만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로 이 산을 미륵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 현포(玄圃)
  •   옛날 경상도 경주 부근에 현동(玄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이 하다가 풍랑을 만나면 무인도인 울릉도에 도착하여 며칠동안 묵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현동 사람들 중 몇 가구가 아예 울릉도에 가서 살기로 작정하고 이 곳 현포에 정착했다. 이 사람들은 움막을 짓고 밭을 개간하고 배를 손질하며 살게 됐고 현동의 현자와 자갈이 많은 이곳의 특징을 따서 현포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추산수원지의 전설
  •   송곳산 부근 수원지에 물이 많이 솟아났다. 이를 본 일본인이 이상하게 여겨서 산세를 자세히 살펴보니 세계를 지배할 만한 훌륭한 사람이 태어날 산세였다. 이 일본인은 이를 막고자 큰 바위를 물이 솟는 곳에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물이 옛날처럼 많이 솟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는 어느 처녀가 아침 일찍 그 수원지 아래로 빨래를 하러 갔다. 부지런히 빨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개가 끼더니 그 수원지의 물이 나오는 굴에서 커다란 지네가 나왔다. 그 지네는 처녀를 덮쳐 피를 빨아먹었고 처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처녀 집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처녀가 오지않자 수원지 밑으로 가 보니 처녀는 죽어있고 지네 발자국과 꼬리가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후 이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 장군수 (將軍水)
  •   석포 마을에서 삼선암이 보이는 동북쪽으로 바다 기슭을 돌면 바위틈에서 샘물이 흐른다. 이 샘물을 장군수라고 부른다.
    옛날 이 섬의 한 젊은이가 날마다 이 샘물을 마시고 밥을 지어 먹었더니 기운이 세어져서 나중에 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장군수를 꾸준히 마시면 장군이 될 만큼 힘이 세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물을 마시려면 바위 사이를 걸어서 가야하기 때문에 물을 얻기가 힘든다고 한다.
  • 추산장군과 평리장군의 싸움
  •   옛날에는 울릉도에는 이 마을과 저 마을이 서로 많이 싸웠다고 한다. 추산에는 추산장군(錐山將軍)이 살았고 평리에는 평리장군(平里將軍)이 살았다. 어느 날 추산장군과 평리장군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추산장군이 평리로 가려면 높은 산을 넘어가야 했다. 산을 넘어서 평리까지 가면 군사들의 기운이 빠져서 이길 수 없어 군사들에게 좋은 방안이 없느냐고 물었다 한다.
    이 때 한 군사가 "장군님, 산에 굴을 파면 됩니다"면서 창을 들어 산을 향하여 던졌다. 그러자 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으로 군사들이 쉽게 평리로 넘어갔다.
    한편 평리쪽에서는 추산 장군의 군사들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되어서 푹 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군사를 거느린 추산 장군이 쳐들어 왔다. 추산의 기습을 받은 평리 장군은 사기가 떨어져 결국 추산장군이 승리했다. 이 후부터 이 산을 삐쭉산 또는 송곳산(錐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성하신당(聖霞神堂) 성황당(城惶堂)
  •   태하동의 성하신당(聖霞神堂) 전설은 울릉도의 대표적인 전설이다.
    조선 태종(1137년) 때 김인우란 사람이 울릉도 안무사(按撫使)로 병선 2척을 이끌고 태하동에 도착했다.
    그는 태하동을 유숙지로 정하고 울릉도를 순차했다. 내일이면 출항할 예정으로 잠을 자던 중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해신이 꿈에 나타나 일행 중 남녀 2명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한다. 안무사는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나 잊어버리고 다음날 출항하기로 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았던 풍파가 일어 멈추지를 않았다. 며칠간을 잠잠하기를 기다리던 안무사는 문득 현몽이 생각났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 전원을 모아놓고 동남동녀(童男童女) 2명에게 일행이 유숙하였던 장소에 필묵(筆墨)을 잊고 왔으니 찾아오라고 명했다.
    필묵을 찾으려 두 사람이 숲 사이로 사라지자 풍랑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안무사는 서둘러 일행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했다.
    필묵을 찾으러간 어린 남녀는 아무리 찾아도 필묵이 없어 해변으로 돌아와 보니 배는 벌써 멀리 바다 위를 떠나고 있었다. 두 동남동녀는 땅을 구르며 고함을 쳤으나 배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울부짖던 두 남녀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서 죽고 말았다.
    한편 본국으로 돌아간 안무사는 항시 연민의 정과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몇 년이 흐른 후 그는 다시 울릉도 안무의 명을 받고 울릉도에 갔다.
    안무사는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동남동녀를 찾아냈으나 그 때 유숙하였던 그 자리에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이 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이를 보고 동남동녀의 혼을 달래기 위해 그 자리에 작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이면 이들 동남동녀의 넋을 위로하고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새로 지은 배도 반드시 태하의 성하신당에 제사하여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한다.
  • 와다리의 용굴
  •   울릉도 동쪽 절벽 아래에 와다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와다리 마을의 남쪽 바닷가 절벽 밑에 큰 굴이 있다.
    하루는 이 굴 근처에 안개가 끼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는데 번개가 치고 오색 구름이 하늘까지 뻗치고 굴에서 커다란 용이 나와서 절벽을 기어올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기이한 소리를 내더라는 것이다.그 뒤부터 이 굴을 용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용굴은 본토의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 용굴에서 연기를 피우면 그 연기가 본토에서 나온다고도 전해진다.
  • 동백꽃의 사연
  •   울릉도 바닷가 마을에 금실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육지에 볼일이 생겨서 육지로 가게 되었는데 남편이 돌아온다는 날이 지나도 배는 오지 않았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기다림에 지쳐 몸져 눕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내는 숨을 거두면서 "내가 죽거든 남편이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 주세요"라고 유언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 불쌍해 넋이라고 위로해주려고 바닷가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장사를 지내고 돌아오니 그 집 앞 뜰에 있던 후박나무에 흑비둘기떼가 와서 우는데 마치 "아이 답답 넉넉잡아 열흘만 더 기다리지. 온다. 온다. 남편이 온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 원수야 원수야 열흘만 더 일찍오지 넉넉 잡아서"라고 말하는듯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에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은 아내의 무덤으로 달려가 목놓아 울었다.
    "왜 죽었나 1년도 못 참겠더냐, 열흘만 참았다면 백년해로 하는 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 한바다 원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하지" 하고 땅을 치면서 통곡하였다.
    남편은 매일 아내 무덤에 와서 슬프게 울고는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돌아서려는데 아내 무덤 위에 못보던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빨간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은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에도 피어 있었다.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숨진 아내의 애절한 사랑이 서린 이 꽃은 바로 울릉도에 분포되어 있는 동백꽃이다.
  • 산신령(山神靈)이야기
  •   울릉도 개척 이전 지금의 본천부 마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봄날 이 집 노모가 어린 손녀를 데리고 산에 나물을 뜯으러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함께 나물을 뜯었으나 어느새 헤어지고 말았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손녀를 잃은 할머니는 정신없이 손녀를 부르며 찾아 헤매었다. 할머니는 해가 지자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네 장정 여러 명이 횃불을 들고 손녀의 이름을 부르며 온 산천을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마을 청장년들을 동원하여 다시 수색을 하였다. 이 등성이 저 등성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헤매던 중 한 골짜기에서 "찾았다"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소리나는 곳으로 모여 들었으나 그곳은 도저히 사람이 갈 수 없는 절벽이었다.
    젊은이들이 밧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 손녀를 구출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손녀가 나물을 뜯다가 졸음이 와서 잠깐 누워 있었는데 수염이 흰 노인이 와서 '이곳에서 자면 안 되니 따라 오라'고 하기에 따라 갔더니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니 푹신한 이불도 있고 할아버지가 자장가를 불러주고 해서 푸근하게 잘 자고 일어나니깐 어디에서 나를 부를는 소리가 나서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이 산꼭대기에는 성인이 살고 있다고 하여 성인봉(聖人峰)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 울릉도 심청이
  •   천부동에서 도동으로 가는 뱃길에서 가장 물결이 거센 곳이 삼선암(三仙岩) 근처이다. 옛날 이 삼선암 근처에는 해마다 7월이 되면 처녀를 빠뜨려 제사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용왕에게 처녀를 바쳐서 뱃길이 안전하도록 하자는 믿음에서 온 습관이라고 보인다. 또 이 근처에서 용왕의 딸이 올라와 왕자를 데리고 물에 빠졌는데 그 자리에 삼선암이 솟아났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 산삼(山蔘)을 캔 사람들
  •   옛날 산막의 어느 집에서 밤에 잠을 자던 아이가 사라졌다. 아무릴 기다려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튿날 집안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저녁에 모두 지쳐 집에 돌아오니 그리도 애타게 찾던 아이가 방안에 잠들어 있었다.
    잠을 실컷 자고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이랬다. 밤에 잠을 자는데 수염이 흰 노인이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기에 따라 나섰더니 어느 바위 밑에 이르러 이것이 산삼이니 캐어가라고 하고는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산삼을 캐어서 왔다고한다. 그러나 그 산삼을 캔 장소는 전해지지않고 있다.

    또 이런 이야기도전해진다. 산에 나무하러 갔던 초동(樵童)이 사흘만에 돌아왔는데 역시 산삼을 캐어 왔다는 것이다. 이 산삼은 3년만에 한번씩 캔다고도 하고 3년만에 한번씩 나타난다고도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서면 산막에선 지성을 올리면서 산삼을 캐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었다고 한다.
  • 솔개와 노인
  •   김 노인과 이 노인 이야기. 어느날 김 노인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소나무가지에 발이 끼인 솔개를 구해주었다.
    그날 저녁 김 노인이 이 노인에게 솔개를 구해 준 이야기를 하였더니 "예끼 이 사람아. 그걸 잡아 왔더라면 푹 고아서 술 안주나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 바보같은 사람아" 하면서 아쉬워하였다.
    이에 김노인은 "에끼 이 사람아! 옛말에 품에 들어오는 새는 살려보낸다고 하는데, 그 미물이 나무가지 사이에 발이 끼어 버둥대는 것을 보고는 그걸 잡아다 먹어?" 했다.
    어느날 김 노인이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올랐다. 그런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지난 번에 구해준 솔개가 나타나서 큰 소리로 울더니 자신을 어떤 바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익은 산삼이 있지 않는가. 김 노인은 그 자리에서 모두 산삼을 열 두 뿌리나 캤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온 마을로 퍼졌다. 김 노인은 이 산삼으로 배를 몇 척 사고 농지도 장만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한편 이웃 이 노인은 이를 배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난들 산삼을 못캐랴 싶어 이튿날부터 남모르게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눈이 충혈이 되어 산을 헤매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는 것도 아니었다. 빈 몸으로 산에 올라가 종일 온 산을 헤매다가 빈 몸으로 허탈해져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눕곤 하였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던 어느 날 이 노인은 발을 잘못 디뎌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말았다. 시체는 그 이듬해 봄 눈이 녹고난 뒤에야 산에 나무하러 갔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 명이(命荑)(산마늘)
  •   이른 봄 눈 속에서 자라는 맛이 좋은 산나물이 명이이다.
    개척 당시에는 겨울을 지내고 나면 식량이 떨어져서 굶주림에 시달리곤 했는데 눈이 녹기 시작하면 모두 산에 올라 눈을 헤치고 이 명이를 캐다가 삶아 끼니를 이었다고 한다. 이 나물을 먹고 생명을 이었다고 해서 "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
  • 울릉도 호박엿
  •   울릉도 개척 당시에 일어난 일. 어느 과년한 처녀가 이른 봄 육지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울타리 밑에 심었다. 이 호박은 나날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호박이 익기 전에 그 처녀는 혼처가 생겨 그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처녀가 시집을 가고 나니 호박은 따 먹어도 자꾸 열렸다고한다.가을에는 누렇게 익은 호박을 따다가 방안 가득히 채웠다. 겨울 눈이 내리고 일 없는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하루는 그 호박으로 죽을 쑤었는데 맛이 엿과 같이 달았다.
    그래서 해마다 호박을 많이 재배하게 되었고 겨울에는 엿맛과도 같은 호박죽을 쑤어 먹었다. 이 유래로 울릉도 호박엿이란 말이 생겼다고한다.
  • 돌굴의 돌선반의 돌책
  •   태하 바닷가 돌굴이 있다.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출입구이지만 들어가면 깊다고 한다. 그 안은 넓은 방이 있는데 그 방에는 돌선반이 있고 그 돌선반에는 돌책이 있다고 전한다.
    옛날 태하 마을에는 재주가 뛰어난 젊은이가 있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이 젊은이는 책만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세상 일에 대해서는 아주 깜깜이었다. 노를 젓거나 돛을 올리는 일은 더욱 몰랐다.
    어느 날 이 젊은이가 낮잠을 자는데 수염이 흰 노인이 나타나서 돌굴 속에 있는 돌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 그 돌책에는 이 세상이 앞으로 수만년 동안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이 자세히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다 읽어야만 돌굴을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못 읽으면 못 나온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섬에 있는 책은 모두 읽고 이제 읽을 거리가 없었는데 매우 소중한 책이 있다니 그것보다 더 반가울 것이 없었다. 세상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귀한 책, 그것도 앞으로 수만년 동안 이 세상에서 일어날 크고 작은 일들을 예언해 놓은 책이라 하니 그것만 알게 되면 정말 이인(異人)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젊은이는 돌구로 들어갔다.
    돌굴의 입구는 그 노인의 말대로 돌선반이 있고 그 선반에는 돌궤가 있었다. 과연 그 속에는 돌에 글을 새긴 두툼한 책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신비의 책이었다. 그 젊은이는 '이제 나는 이 세상의 앞날을 점칠 수 있다. 공부한 보람이 이제 나타났구나' 하는 생가으로 어쩔줄을 몰랐다. 그는 글자 하나하나를 소중히 읽어 내려갔다.
    정말 예측도 할 수 없던 일이 속속 일어날 것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젊은이는 넋을 잃고 있었다. 넘겨도 넘겨도 재미있는 내용이 자꾸 나왔다. 마치 요술의 책처럼 자꾸 넘겨도 남은 장수는 그대로였다. 젊은이는 책을 무척 좋아했지마는 굴에 들어오자 너무 오래 되어서 이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으니 가지고 나가려고 하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젊은이는 아직도 그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젊은이가 돌책을 읽으러 들어간 것은 알지만은 아무도 그 굴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비한 책을 다 읽고 나오면 이인(異人)이 되지만 다 읽고 나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며 그 책을 가지고 나올 수도 없다.
    돌굴 속 돌선반의 돌궤 속에 있는 돌책에는 과연 어떤 것이 쓰여 있을까. 그리고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 나갈까. 그 젊은이는 언제 나올까.
  • 너도 밤나무
  •   태하재 너도밤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이다.
    하루는 산신령이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산에 밤나무를 백 그루만 심어라" 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밤나무 백 그루를 심었다. 심은 밤나무는 잘 자랐다. 그 후 산신령이 또 찾아왔다.
    "밤나무 백 그루를 심었느냐?"
    "예, 백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럼 같이 세어보자"
    세어보니 모두 99그루였다. 또 세어도 한 그루가 모자랐다. 산신령은 화가 났다.
    "이놈들 나를 속이다니?"
    "사실 백 그루를 심었습니다. 신기한 노릇입니다"
    "그럼, 다시 세어보자. 이번에도 한 그루가 모자라면 벌을 내릴 테니 그리 알아라"

    나무를 헤아리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백 그루를 심었지만느 한 그루가 말라죽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백 그루가 안도면 마을 사람들은 큰 벌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한편 산에 사는 나무들은 마을 사람들이 벌을 받을까봐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같이 떨었다. 겁이 났다.
    "마을 사람들이 벌을 받으면 어쩌지?"
    "좋은 수가 없을까?"
    소나무도 섬잦나무도 밤나무도 동백나무도 화솔나무도 명이도 깍새도 모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흔여섯. 아흔일곱. 아흔여덟. 아흔아홉" 모두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밤나무는 99 그루였다. 그때 옆에 섰던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 하고 외쳤다. 나무들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산신령이 물었다.
    "너도 밤나무냐?"
    "예"
    "틀림없지?"
    "예"
    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은 물론이다. 그 뒤로 마을사람들은 이 너도밤나무를 잘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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