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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
호국영령의 혼을 모신 곳
소재지 : 서울 동작구 동작동 44-7

국립묘지는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의 회복과 공산군의 침략으로부터 자유와 국가 번영을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친 16만3천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입니다. 이 곳은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을 주봉으로 하여 정기 어린 동작의 능선이 병풍치듯 3면을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수가 굽이쳐 도는 43만여 평의 포근한 땅입니다.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군인과 군무원만을 안장하였으나, 10년후인 1965년 3월 30일 국립묘지로 승격,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위시하여 국가유공자, 경찰, 예비군 등이 추가 안장되고 있으며 1996. 6. 1.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되었습니다. 국군 창설이후 조국을 수호하다 산화한 호국영령은 서울 장충단 공원내의 장충사에 봉안하여 왔으며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하여 전장에서 전사한 영령은 부산에 있는 범어사, 금정사 등 주요 사찰에 임시로 봉안했었습니다. 그러나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전사자가 증가하여 전투지역에 가매장했던 영령을 편안히 모시기 위하여 1955년 7월 이곳에 국군묘지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
*지하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동작역에 하차 후 도보로 5분.
*버스
111, 140, 21, 212, 212-1, 288, 62-1, 85-1, 89, 30(좌석), 64(좌석), 64-1(좌석), 736-1(좌석), 916(좌석), 933(좌석)버스를 타고 국립묘지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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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정보
[현충문]
현충문은 현충탑으로 들어 가는 문으로서 이 현충문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사당전과 극락전을 본 떠 세워졌으며, 충신과 효자는 호랑이가 지켜준다는 전설에 따라 호국영령을 지켜줄 것을 기원하는 뜻에서 입구 좌우에 호랑이상을 건립하였습니다. 현충탑을 참배하려는 사람은 우선 현충문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집례자의 안내로 참배를 하게 된다.
'70. 6. 22.에는 북한의 무장간첩이 참배요인 암살을 위해 현충문을 폭파하려고 시도하다가 조작 미숙으로 미수에 그친 채 폭발물을 설치하던 1명의 괴한은 시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사하고 나머지 1~2명은 혼비백산하여 도주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국립묘지 창설이래 가장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던 사건입니다.


[현충탑]
현충탑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추앙하고자 세워진 탑으로 민족의 성역인 국립묘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탑 내부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당시의 전사자중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 3천여 호국용사들의 위패와 시신은 찾았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5천 7백여 무명용사 유해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나라를 공식 방문하는 외국 원수와 귀빈들도 이 곳을 참배하게 되며 호국영령의 얼을 기리는 국민들의 참배 행렬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탑 앞에는 이은상 선생께서 지으시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휘호하신 헌시가 있습니다.

[충렬대]
충렬대는 애국지사묘역, 임정요인묘역,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진 선열의 얼을 포괄적으로 추모하는 제단입니다. 이곳에는 구한말의 의병을 위시하여 3.1운동 민족대표, 항일무장투쟁이나 계몽운동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신명을 바친 순국선열 350여 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충렬대는 '71. 11. 17. "후손 없는 선열의 제단건립위원회"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영령들을 수호하는 뜻으로 높이 5.13m, 가로 4.84m, 폭 1.5m의 화강석에 용의 모습이 조각되었고 그 좌우측 전방에는 높이 2.12m의 마신상(馬神像)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단 전면 상단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한 "민족의 얼" 이란 글이 오석에 새겨져 있으며 제단 후면 상단에는 이은상 시인의 헌시가 있고 제단 앞에는 청동 향로가 놓여 있습니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이곳에는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에서 전사한 학도의용군 김춘식 등 48위의 무명용사 유해가 반구형 석함 분묘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여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자 약 5만 명으로 추산되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자진 구국전선에 참전하여 포항지역을 비롯한 각 지구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그 중 7,000여명이 전사하였으나 무덤조차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 곳에 안장된 48위는 당시 포항전투에서 중대급 규모의 학도의용군이 공산군 전초대와 분투하다가 전몰하여 당시 포항여자중·고등학교 부근에 가매장되어 있었으나 '63. 9. 24. 국무회의에서 이들을 국군묘지에 안장할 것을 의결하여 '64. 4. 25. 대한학도의용군 동지회 주관 하에 국군묘지 서쪽1번 묘역에 안장하였다가 68년 4월 현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에 이장하게 되었습니다.
[현충관]
1980. 12. 31. 현충관으로 건립 사용하던 이 건물은 1988. 3. 29. 현충선양관 개관 이후 국립묘지 소개를 겸한 교육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연건평 445평의 철근 콘크리트 기와조 2층 건물로 기둥, 주춧돌, 지붕 등은 고전 한국식이고 기타 부분은 현대식으로 된 절충식 건물이며 건물 내부에는 410(1층 318, 2층 92)석의 좌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호국종]
호국종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1973. 5. 8. 재향군인회에서 회원들의 성금으로 제작하여 국립묘지에 기증한 종입니다. 이 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호국종" 이라 명칭하고 휘호하였습니다. 이 종은 현충문 오른쪽 아람길 입구에 있는 6각형 종각 내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 종각은 국방부에서 건립한 건물로 6개의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는 기와를 얹은 고전 한국식 건물이며, 종각의 면적은9.2㎡입니다.
이 종은 매년 6월 25일 재향군인회에서 실시하는 추념행사 후에 타종하는데 타종 횟수는 1950. 6. 25.를 기준으로 경과한 햇수만큼 타종하다 1995년 부터는 6.25 참전 16개국, 의무지원 5개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22개국을 상징하는 의미로 22번 타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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