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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실천중심의 수행 도량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백련사 1432년(세종 13)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와 다산의 <만덕사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839년(신라 46대 문성왕)에 무염(無染)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중요한 수도 도량으로 면모를 달리한 것은 1211년(고려 희종 7)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가 크게 중창한 뒤부터이다.
고려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나 왜구의 침입을 받아 이 절도 함께 폐허되나 조선 세종때 효령대군(孝寧大郡)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다.
행호는 잦은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절 주위에 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행호토성(行乎土城)이라고 한다.

그 후 효종때 3차 중수를 하고 '원묘국사 중진탑(圓妙國師 中眞塔)'과 '백련사 사적비'를 세우게 된다.1208년(희종 4)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은 원묘의 제자 원영(元營)은 1211-32년에 걸쳐 80여 칸의 대가람을 완공했으며, 이곳에서 요세(了世)가 실천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조직했다.
고려말에는 왜구에 의해 폐허화되었으나 조선 세종 때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아래 가람을 재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시왕전, 나한전, 만경루, 칠성각, 요사채등이 있다. 그외 유물로는 만덕산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이 있으며, 절 주위에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의 다산초당이 있다.

지금의 절 또한 그때 쌓은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모습인데 만경루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높은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이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포식 집인데 빗살무늬 창호의 8문짝 하단부에 엷게 부조된 귀면상(鬼面像)의 처리가 단연 돋보인다. 대웅전 안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만덕산 백련사적비는 원래 고려 명종때 문신 최자(崔滋, 1188∼1260)가 지은 비였으나 없어지고 조선 숙종때 조종저(1631∼1690)가 쓴 비문으로 1681년에 세운 것이다.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험상궂게 생긴 눈을 한 귀부 위에 비신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 모양을 한 가첨석(加 石)이 놓여 있다.


  찾아가는 길
◇ 승용차
● 승용차
* 호남고속도로-광산/비아IC-13번국도-나주-영암-월출산-성전에서 2번국도-강진-해남방향8번국도-백련사
* 서해안고속도로-목포IC-2번 국도- 영산호와 월출산 방향-성전-강진- 해남방향 8번 국도-백련사
* 남해안고속도로-광양 또는 순천IC-2번국도-벌교-보성-장흥-강진
◇ 대중교통
● 철도
용산-목표 노선 이용

● 고속버스
* 서울-강진, 첫차 7:30분 막차 17:30분, 1일 6회 운행
* 부산-강진, 첫차 7:30분, 막차 16:55분, 1일 22회 운행
* 강진공용정류소(061-432-9777) 광주고속터미널(062-360-8114)
  역사
- 백련결사를 일으킨 원묘국사 요세

▶요세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사람 최표(崔彪)와 최홍(崔弘), 이인천(李仁闡)등의 권유로 만덕사에 자리잡고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일으키게 한다. 이 역사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까지 21년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중심의 수행인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는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善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寺結社)이다. 원묘국사 요세는 1236년 '백련결사문'을 발표하면서 고려 불교계의 새로운 혁신기풍을 마련한 주인공이었다. 요세는 한때 보조국사의 권유로 수덕사에서 조계선을 수행하다가 1208년 수선사와 결별하고 이곳 약사암-백련사-보현도량 개설로 이어진다. 이후 백련사에서는 120년동안 요세의 뒤를 이어 천인(天因, 1205∼1248), 천책(天 , 1206∼?)등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으며 보조의 수선사 정혜결사에 못지않게 성황을 이루게 된다.

▶ 백련결사는 고려후기 불교결사운동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서 수선사와는 달리 참배와 정토를 강조하면서 일반민중을 구제대상으로 하고 있었으니 강진의 백련결사 운동은 수선결사가 무신정권과 결탁하여 정치세력화한 것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순수불교운동이었으며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혼란속에서 민중을 구도하고자 한 민중 불교운동이었던 것이다. 또한 백련결사는 몽고의 침입에 항쟁하는 차원에서 지식인과 민중을 규합하려는 의지를 보였던 역사적인 산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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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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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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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백련사

  천연기념물
  • 백련사의 동백림 (전라남도 강진군)
  • 자세히..
     
    백련사의 동백림
    백련사 절 앞에 동백나무 숲이 군데군데 자생하고 있으며 비자나무·후박나무·푸조나무와 대나무가 곁들여서 자라고 있다. 또 밑에는 차나무가 있다. 약 1전보의 면적에는 약 1,500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임내의 초본식물 중에는 향들골이 특히 눈에 띈다. 백련사는 강진읍에서 4km떨어진 곳 만덕산에 있으며 고려시대 원묘국사가 옛 백련사를 창건하고 백련결사를 일으켰다. ...
      시도유형문화재
  • 백련사 대웅전 (전라남도 강진군)
  • 자세히..
     
    백련사 대웅전
    백련사 원래의 이름은 만덕산이란 산명을 따서 만덕사라 하였으나 지금은 백련사라 부르고 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장 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키 유서 깊은 고찰이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지붕으로 겹처마인 다포식 건물이 다. 일단의 막돌허튼층 쌓기의 높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 고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반이 결구되 어 있으며 그 위에 주두가 있으며 보뺄목을 ...
      시도유형문화재
  • 백련사 사적비 (전라남도 강진군)
  • 자세히..
      이 비는 백련사 대웅전의 우측으로 약 50m 떨어진 빈터에 자리잡고 있다. 외형을 보면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었는데 이수는 용이 반결하는 방형의 옥개석이다. 자경 15cm의 전서로 「만덕산백련사비」라 쓰고 측면에는「 전라도강진 만덕산백련사사적비」라는 제목을 명문하였다. 비문은 행서체인데 통훈대부전행홍문관부찬지제교겸경연검토 관춘추관기사관조종자가 찬하고 글씨를 쓴 분은 현록대부랑 선군겸오위도총관 우이다. 또 전액은 가덕대부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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