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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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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전통 약령시, 국내 제일의 약재 시장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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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 약령시는 800m 길이의 약전골목에 350여개의 업소가 늘어선 국내 최대의 한약재 시장이며 한의약의 메카이다. 남성로에 들어서면 한약 닳이는 냄새가 먼저 달려나온다. 한약방과 한의원 간판이 700m 가량이나 늘어선 이곳이 바로 약전골목이다.
약전골목은 국내 최대의 약재 시장인 약령시에서 비롯됐다. 약령시는 1650년대부터 음력 2월과 10월에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에 약령시가 들어선 것은 경상도에서 우수한 약재가 많이 생산되는데다 약재를 운송할 수 있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춘 때문이었다. 약령시가 열릴 때면 대구 거주자보다 약재를 사고 팔러오는 사람이 더 많았을 만큼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서양의학이 널리 보급되고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약령시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약전골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곳은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3층건물의 약령시관에는 약령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매월 1일부터 5일까지는 한약재시장이 열리고 있다.
■ 먹거리 ■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 향토음식으로는 따로국밥과 현풍 할매곰탕, 동인동 찜갈비 등을 들 수 있다. 따로국밥은 소뼈로 우려낸 국물이 얼큰하고 구수하다. 도심인 중구 전동에서 5개업소가 50여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달성군 현풍읍 달성경찰서 골목길에 위치한 현풍 할매곰탕은 쇠고기를 듬뿍 썰어 넣은 구수한 국물과 나물무침, 무장아찌 등 밑반찬이 맛갈스럽다. 중구 동인동 동인파출소 뒤편에 있는 10여개 갈비집에서는 30년 전통의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갈비찜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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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URL) : www.herbmart.or.kr 이메일(E-Mail) : herbmart@herbmart.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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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
● 자가용 대구역에서 동아쇼핑 방향으로 |
◇ 대중교통
● 시내버스 106, 156, 242, 49, 401, 404 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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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령시와 강원도 산삼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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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약령시(藥令市)가 열리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조선왕조때 각 지방관찰사들이 그 지방에서 나는 약재를 조정에 진상했는데 경상도 관찰사도 조정에 진상할 약재를 모으기 위해 약령시를 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재가 부족했던 일본에서 1630년께부터 조선왕조와 교역하면서 많은 약재를 요청하자 그 수요를 채우기 위해 약령시를 열었다는 것이다.
약령시에는 욕심많은 부자를 곯린 강원도 산삼장사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약령시가 열리면 해마다 찾아오는 강원도 산삼장사 청년이 있었다. 그는 일년내내 강원도 깊은 산속을 헤매며 산삼을 케서는 대구 약령시에 와서 그것을 팔곤했다.
대구 동성로 부근에 2천 석 넘게 하는 서창규란 갑부가 있었다. 서창규는 돈은 많았으나 인색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여름동안 잔병치레를 한 서창규는 쇠약해진 몸을 보하기 위해 가을 약령시에 나타날 강원도 산삼장사를 기다렸다. 이윽고 약령시가 열리고 강원도 청년이 커다란 산삼을들고 나타났다. 서창규가 그 중에서 제일 좋은 놈을 골라 값을 물으니 6백원을 달라 한다. 그 때로선 큰 돈이다. 서창규가 값을 좀 깎자고 부탁했으나 그 아래로는 절대 팔지 않겠다는 청년의 말에 한 꾀를 생각해 냈다.
"할 수 없지. 어서 삼이나 달이게." 그때 산삼장사는 그냥 파는게 아니라 약탕관에 넣어 그 자리에서 달여주는 것이 상례였다. 청년은 서창규가 지켜보는 앞에서 산삼을 달이기 시작했다. 다 달인 산삼을 청년이 고운 삼베로 짜서 서창규에세 내밀자 서창규의 태도가 돌변한다.
"이 사람아 아무래도 6백원은 너무하이. 나는 3백원밖에 못주겠으니 3백원에 팔려거든 주고 아니면 그냥 두게." 다 달여논 산삼, 이제 네가 어쩌겠느냐는 속셈이다.
서창규의 꾐에 넘어간 청년은 억울하고 분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팔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 꾀보에게 헐값에 주기는 싫었다. "알겠습니다"고 대답한 산삼장사 청년은 달여논 산삼을 훌쩍 마셔 버리고 말았다. 서창규가 청년을 말리려 했으나 노란 산삼국물은 이미 청년의 목으로 넘어가고난 뒤였다. 그 후 3년이 지난 후 여느해처럼 약령시에 산삼을 팔러온 청년은 일부러 서창규를 찾아갔다.
서창규는 그때보다 더 쇠약해 있었다. 고소하게 생각한 청년은 알통이 울퉁불퉁한 굵은 팔뚝을 걷어 보이며 "그렇잖아도 건강한 몸이 어르신네 때문에 억지로 먹은 산삼 덕분에 더욱 건강해져 기운이 넘칩니다."고 약을 올렸다.
서창규는 얕은 꾀를 부리다 구하기 힘든 큰 산삼을 놓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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